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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 CNC기술의 출발
구분 동향자료 저자 강호제
발간기관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발간일 2016-11-21
원문링크 http://www.nktech.net/inform/nkt_briefing/nkt_briefing_v.jsp?record_no=317

북한 CNC기술의 출발
                                                                                                           

북한의 ‘Spin-off 전략’은 2009년 8월 11일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라는 로동신문 정론으로 유명해진 ‘CNC’로 구체화되었다. 이전 시기 “수자조종장치” 혹은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로 번역하여 부르던 것을 영어표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외국어, 외래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려는 북한에서 외국어를 ‘씨엔씨’라는 한글표기가 아니라 알파벳 표기 그대로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북한 언론에서는 CNC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였고 급기야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는 “CNC기술, CNC화”라는 알파벳 표기가 그대로 실렸다는 것이다. 2010년 8월에 개최된 ‘아리랑’ 공연에서는 “CNC 주체공업의 위력”이라는 카드섹션까지 등장하였다. 


CNC란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의 약자로서 컴퓨터를 통해 수치제어하는 장치를 말한다. 이 장치는 보통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고 하여 어미기계(mother machine)이라고 불리는 공작기계에 적용이 되어 ‘CNC공작기계’를 뜻하기도 한다. 즉 CNC란 좁게는 CNC공작기계를 뜻하고 넓게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수치제어를 하는 기계장치 전체를 가리킨다. 작업자가 손으로 일일이 부품을 깎고 수치를 측정하는 작업방법으로는 정밀한 기계장치를 만들기 어렵다. 작업의 한계가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재료의 낭비도 많다. 무엇보다 기계의 정밀도를 보장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기계장치(대표적으로 우주발사체)는 정밀한 CNC공작기계를 활용해야만 만들 수 있다. 우주발사체 관련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국가들을 일컫는 ‘스페이스 클럽’ 국가들이 대부분 최첨단 CNC공작기계 제작 기술을 보유한 국가이기도 한 까닭이다.


2009년 1월 ‘5축동시조종 수력타빈날개가공반’


2009년 하반기부터 CNC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국가과학원 조종기계연구소 연구진에 의해 ‘5축동시조종 수력타빈날개가공반’이라는 장치가 2009년 1월에 개발된 것이 있었다. 북한에서 민간 부문의 CNC 핵심연구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조종기계연구소 연구자들은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에 파견되어 생산설비의 혁신, CNC화를 진척시켰던 것이다. 김정일이 2009년 1월 11일에 이곳을 찾은 것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당시 현지지도를 수행한 사람으로 공개된 3인 중에 주규창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CNC와 우주발사체-로켓 개발의 직접적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표준형 CNC가 아니라 고급형, 고성능 CNC라 할 수 있는 5축가공중심반은 ‘련하기계공장’에서 2002년 이전에 이미 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종기계연구소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새 형의 전용수자조종장치’를 개발하여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에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후로 이들은 ‘10m광폭선반’과 ‘300㎜보링반’까지 CNC화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화의 본보기 공장으로 선정된 ‘구성공작기계공장’과 트랙터 특화공장인 ‘금성뜨락또르공장’에도 CNC화된 생산설비와 생산공정이 완비되었다고 한다.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CNC를 부각시킨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에서는 기계공업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CNC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을 돌파하였다고 공언하였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련하기계공장에서 개발한 5축가공중심반, 5축방전가공반과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는 새로운 형의 CNC조종장치”의 완성이었다. ‘초정밀 고속 자동화 기계제작 기술’인 CNC기술을 확보하였기에 과학기술을 중시하여 기술강국을 완성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경제발전 전략이 구체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경제강국의 대문을 힘차게 두드리며”, “경제강국에로의 직선주로에 들어섰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물론 제품의 정밀도나 작동속도, 가동시간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공개된 성능표와 가동모습을 보면 세계 10위권 이내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만하다. 결국 2009년부터 북한 정책의 핵심이 된 CNC는 김정일이 제시했던 ‘국방공업을 우선시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의 구체적인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1986년 구성-105호

컴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가 아니라 CNC공작기계로 부르기 시작한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에서 이 기술의 기원을 1995년 4월 29일 련하기계공장을 방문한 김정일이 공장 현관 앞에 전시된 시제품을 살펴본 것이라고 소개면서 대부분 CNC기술이 이때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북한 CNC기술의 기원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에서 최초로 제작한 현대적 의미의 수자조종기계는 1986년에 제작된 ‘구성-105호’이다. 이는 1982년 11월 “자동화된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공작기계새끼치기 운동”을 제안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학원에서 과학기술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3년 3월부터였다. 전자화, 수자조종화된 대형 및 특수정밀 공작기계들를 개발하기 위한 ‘제2의 공작기계새끼치기 운동’은 1985년 6월부터 1988년 9월까지 전개되었다. 그 사이에 NC공작기계인 ‘구성-105호’가 제작되었던 것이다. 송미란은 1982년에 ‘가장 초보적인 조건을 갖춘 수자식공작기계’가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제작에 대한 결정이 나서 정책이 집행되기 시작한 해가 1982년이라 이렇게 해석하여 이야기한 것 같다.


1995년 구성-10호, 2001년 CNC구성-10호


1988년 11월에 개최된 제6기 제14차 전원회의에서는 “공작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 공업발전에서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구성-105호’를 계열생산하는 분공장을 ‘구성기계공장’이 포함된 ‘4월3일공장’에 군인을 동원하여 건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역량과 사업집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자자동화과학 분원’과 ‘전자 자동화 공업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1991년 10월에 개최된 ‘전국과학자대회’에서도 이러한 정책적 방향을 중점적으로 토론, 강조하였다. 1995년 김정일이 처음 보았다고 한 CNC공작기계는 구성-105호를 토대로 발전시킨 ‘구성-10호 만능선반(4축)’이었던 것 같다. 이를 기반으로 2001년에 개량한 것인 ‘CNC 구성-10호’였다. 


2011년 완공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


북한 최대 CNC공작기계 제조 공장으로 축구장 7배에 해당하는 큰 공장이다. 내부에는 항온, 항습 장치가 완비되어 있고 지열을 활용하여 온도를 조절하게 되어 있다. 모체인 희천기계종합공장은 전체 종업원수가 6000여명이나 되었던 특급기업소로 연 1만대 가량의 공작기계를 생산하였고 운반로봇을 제작, 활용하였던 곳이다.



2011년 완공한 ‘운산공구공장'(이후 ‘7월13일 공장’으로 개명되었다가 최근 독립)


소련의 원조로 전후 건설 된 측정공구 제작 공장으로 금속기계공업성 소속이다. 원래 부지면적은 33,000㎡이었는데 3.3배가 늘어난 110,000㎡로 확장되었다. CNC공작기계들과 로봇(robot)생산공정이 상호결합된 무인화 생산체계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CNC(컴퓨터수치제어)공구자동흐름선으로 2011년에 김일성상 수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당비서였다고 알려진 “홍영칠”은 최근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자주 수행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군수 관련 핵심 지도부라고 할 수 있다.
  
 

? 현재 CNC화 추진상황에 대한 평가


o 탑다운(top-down) 방식의 발전전략

-  CNC는 김정일의 일방적인 리드에 의해 발전되었던 분야이다. 1980년대 중반 CNC기술의 개발결정이 내려진 회의가 김정일에 의해 진행된 것이나 ‘장군님과 CNC’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김정일의 CNC에 대한 이해 수준을 다른 지도부 성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  1992~1995년 사이에는 김정일도 CNC공작기계를 발전하도록 지원하지 않은 듯하다. 지원하지 않았음에도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수준의 CNC를 개발/완성한 것에 감격하여 ‘련하’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듯하고 1995년을 새로운 기점으로 삼은 듯하다.
-  CNC기술은 군수공업의 핵심 기술이라 이것의 민수로 전환하겠다는 결심은 최고 지도자 수준이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의 결심, 그리고 리드가 없었다면 CNC를 중심으로 한 군수의 민수 전환 프로젝트가 수립/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  김정은이 CNC와 함께 거론된 이유는 김정일이 국가의 명운을 걸로 발전시킨 것이 바로 CNC였기 때문이다.


o 지역별 핵심 거점 확보 단계

-  CNC화가 진행되고 있는 단위가 중앙에서 관리하는 핵심 거점 단계를 지난 지역별 거점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따라서 확산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최근 그 발전 단계가 바뀐 듯하다.
-  CNC화를 도와준 과학자, 기술자 집단도 중앙 수준이 아니라 지역의 기술대학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청진광산금속대학, 사리원공업대학, 평양기계대학, 희천공업대학 등)


o 제품 성능에 대한 신뢰도 획득 못함


-  최근 중국의 단둥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 CNC, 혹은 련하기계 생산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외부의 평가는 미약한 수준이다.
-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북한 이외의 지역에서 기계를 시험가동시켜보고 운영해보아야 가능한데, 아직 제3세계 국가 이외에에서는 북한 CNC기계를 구입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 없음.
-  CNC공작기계부문에서 전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이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북한으로서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 중국에서 북한제 CNC공작기계가 호평을 받고 운영되기 시작하면 제품에 대한 객관적인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고, 성능 지속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쌓일 수 있게 된다.


o 대량 생산을 위한 자금/자원 확보 못함

-  CNC공작기계는 간단한 것도 1억원(10만불)이 넘어간다. 따라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정도 금액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고급 CNC공작기계는 이 금액의 10배~100배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생산현장의 CNC화는 상당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 일이다.
-  북한 스스로 막대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국방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만들어졌지만 최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조직이 없어졌다고 한다.
-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한 직접적인 이유는 이와 같은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위한 것이다.


※ 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약 200만불 가량의 배상금이 들어올 수 있다고 하니 직접적인 자금난 해소가 가능하다.
※ 또한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서는 IMF나 IBRD와 같은 국제 금융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는 제한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 리스크가 해소되었다는 신호가 주어진다면 유동하고 있는 민간의 자금들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